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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보령에서 한 달 살기 글의 상세내용 : 글의 상세내용을 확인하는 표로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 첨부, 내용으로 나뉘어 설명합니다.
제목 질문 보령에서 한 달 살기
작성자 최** 등록일 2024-05-10 조회 41
첨부 jpg파일 첨부 대천해수욕장 (2).jpg(0.34MB) 미리보기
jpg파일 첨부 개화예술공원.jpg(0.21MB) 미리보기
jpg파일 첨부 성주산자연휴양림.jpg(0.24MB) 미리보기
보령의 봄을 열흘 동안 걸었다. 충청남도와 보령시가 여행비 일부를 지원하는 ‘보령에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선정된 여행길이었다.

보령은 대천이라고 해야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많은 곳 같다.
1995년 보령군과 대천시가 통합하여 보령시로 알려지기 전부터 장항선 대천역과 대천 해수욕장이 널리 알려져서 그런 것 같다.
보령은 외국인을 포함하여 십만여 명이 살고 있으며, 구도시와 신도시로 도심이 형성되어 있었다.

필자는 10여 년 전 가을, 오서산에 억새 물결을 이루고 있을 때 보령을 처음 찾았었고, 2019년 여름에는 머드 축제를 둘러보며 외국인들이 많이 찾은 걸 보고 부러워했었다.
여름의 대천해수욕장에는 인파 물결이, 가을의 오서산에는 자연 물결이 일렁이던 광경이 잊히지 않는다.
보령에는 바다와 산뿐만 아니라 들과 공원과 호수가 있었고, 문화유적이 필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보령에는 대천해수욕장 등 아홉 곳을 명소로 지정한 9경이 있었다. 오서산은 9경의 더하기였다.
바다와 들과 공원과 호수를 구경(9경)하고, 산에 오르기를 더하는 필자의 여정 첫 번째는 보령 제9경인 보령호였다.
보령호는 1990년대에 보령댐 건설이 발표되면서 이곳에 살던 1,400여 세대의 6,000여 명이 다른 곳으로 터전을 이주하고 1996년 보령댐에 담수가 되면서 만들어진 담수호다.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망향정에 서서 보령호를 살펴보니, 당시에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스쳤다.

보령시 문화의 전당과 보령시 박물관은 구 대천역이 있었던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는 성주사지에 관한 유산과 보령의 과거를 눈여겨 볼 수 있었는데 문화의 전당 주위에는 중앙시장 등 전통시장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장항선 대천역을 이용했던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며 찾았을 장면이 스친다.

그다음 찾은 곳은 호국 사찰이었던 성주시지였다.
천년역사관에 들어서니 유경종 문화관광해설사님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궁금한 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성주면에는 제3경 성주산 자연휴양림과 제4경 개화예술공원 그리고 석탄박물관이 있었다.
자연휴양림 편백 숲에서 피톤치드 기운을 받고 개화예술공원을 찾았는데 야외 정원에는 꽃과 조각 작품이 바쁘게 걷는 필자의 발을 잡는다.
필자에게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는 연탄은 강원도 태백이나 정선 등에 있는 탄광에서만 생산하는 줄 알았는데 보령에도 탄광이 있었다.
지금은 폐광이 되었지만, 주위를 살펴보니 검은 돌과 흙이 보인다.

필자는 무창포로 향했다.
무창포 앞 바다는 모세의 기적처럼 뭍에서 석대도로 갈 수 있도록 길이 나는 날이 있었지만, 여정에 날짜를 맞추지 못했으니 어린 장수의 전설이 있는 석대도를 바라보면서 서해랑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서해랑길은 땅끝 해남에서 강화까지 1,800km 해안 길이다.
보령 구간은 4개 코스 52km로 제5경 무창포해수욕장, 제2경 죽도(상화원), 제1경 대천해수욕장 그리고 제7경 충청수영성과 토정 이지함 선생 묘, 갈매못 성지 그리고 천북 굴 단지를 만날 수 있었다.
무창포와 대천해수욕장에는 아직 제철을 맞이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봄 바다를 즐기고 있었고, 상화원에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전통가옥 분위기를 느끼려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원산도였다.
보령에서 태안 안면도로 연결된 해저터널을 통해 오봉산에 오르니 바다에 수놓은 듯한 섬들이 수묵화를 연상하게 한다.
118여m 높이의 오로봉에는 봉수대가 있었는데, 외적이 침입하는 것을 봉화나 연기로 알렸던 봉수대가 통일신라 때에는 천부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에서 유학하고 고국으로 돌아오던 최치원 선생은 이곳 원산도 오로봉에 올라 배달민족의 시조 환웅 황제께 제를 지내며 천부경을 독송했다고 전해져 오는 곳이다.

열흘 동안 보령의 해안과 호수, 산, 공원, 전통시장을 찾으면서 도시 곳곳이 쾌적하고 잘 가꾸었다는 것을 보고 느꼈으며, 낯선 길을 묻는 여행자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열흘 내내 유적과 명소를 많이 찾아다녔으므로 몸은 고단했지만,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여유는 필자를 평온하게 했다.

안타까운 것은 인근의 서천과 홍성보다는 낫지만, 보령도 점차 인구가 줄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령의 구호처럼 만세 보령이 되어 오랫동안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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